시선2015.12.11 23:25







애니메이션은 보고나면 왜 그렇게 많은 생각이 드는가? ........-_-








괴물의 아이 (The Boy and The Beast, 2015) 







직원 연수차 보러간 괴물의 아이 사실은 짐승과 아이인데 미녀와 야수 같은 느낌이다. 

그러면 아이와 야수 이정도가 맞지않나?

그건 뭐 중요하지 않으니까. 


보고 걸리버 여행기 생각났다. 

휘늠이라는 말의 나라를 간 걸리버는 말들의 기품있고 양심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에 감동받는다.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지만 짐승의 나라는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그중에서도 인간사처럼 희노애락 싫으네 좋으니 폭력이고 비폭력이고 많은 군상들이 존재하는것 같았지만 한 가지 다른점이있었는데, 그건 인간의 마음엔 어둠이 있어서' 그것에 잡아먹힐 수도 있어' 라는 것이었다. 




이래서 애니메이션을 보는가보다. 

이 짧은 한 마디 말은 정말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나는 좋은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을 함께 가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은 동일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좋은 모습도 갖고 있고 또한 싫은 어떤 모습도 있을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둠을 우리는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 

그것은 우울이 될 수도 있고, 불안으로 불리거나 수치심이나 죄책감일 수도 있다. 











쿠타는 외로웠고 혼자였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관심을 받은 후에야 우리는 우리의 약점과 갈망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고 느끼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받지 못한 사람은 주기 어렵다. 



쿠마테츠는 혼자서 강해져야만 했다. 그 세계엔 다른 사람들이 없다. 다른사람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모든것은 쿠마테츠가 확인하고 쿠마테츠가 혼자 연마하고 쿠마테츠 혼자 깨달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떠니? 라고 물어주지 않았다면 나도 그렇게 묻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세상은 믿을만한 것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난다고 쉬이 믿는것이 이상한것처럼 쿠마테츠가 잘 설명을 할 수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쿠마테츠와 쿠타가 서로 같이 지내는 과정은 상담의 과정과 비슷하다. 하나의 관계를 비교적 안전하다고 느끼는 상담에서 맺고 우리는 조율이라는 것을 하게 되며 내 대상관계를 다시 보이며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풀어가기 시작한다. 




쿠타의 혼란스러운 모습은 내 안에 대상에 대한 좋은 모습과 싫은 모습이 공존할때 느끼는 혼란스러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씩 그것을 통합하기 시작한다. 그 통합의 과정은 인사이드 아웃이나, 겨울왕국처럼 기발하지는 않지만 수수하며 평범하여 마음에 와 닿았고 오글거리기도 했다. 













결정못하는 토끼수장이 간간히 재미를 안겨줌. 

성장애니로 추천할만한 애니메이션.





쿠타와 쿠마테츠처럼 저렇게 으르렁거리며 서로 말해서 깊은 마음속에는 나에대한 사랑이 가득차있어 라고 알아주면 좋지만, 현실은 그렇게 안될 것이 아쉽다. 또한 여주는 너무 보조적인 역할에 비교적 약한모습, 그다지 마음에 드는 캐릭도 아니었고. 난 픽사나 디즈니가 더 좋나봐 ㅠ_ㅠ 

















사진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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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jmi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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